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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볼 영화 정말 없다. 쿵푸팬더, 캐리비안의 해적, 써니 이게 다 뭐야. 시시껄렁한 이야기 뿐이다. 작년에는 매 주 뭘 볼까 고민하던 영화가 많았는데 요즘은 시간이 남아도 선듯 극장에 가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번 휴일도 뒹굴대며 뭐하고 노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 트위터를 뒤적 뒤적 이는데 [무산일기] 박정범 감독님이 트위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 반가워라. 근데 가장 최근 트윗에 [굿바이 보이] 봤다는 글이 있더라. 어라? 그거 재밌나?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사방에 붙어있던 [굿바이 보이]포스터. 땟국물 흐르는 어린애의 멍때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암울한 이야기 인것 같고 제목은 또 왜이리 심심하담. 알고 보니 부산영화제에 상영했을 때는 [개 같은 인생]이었다고 한다. 이 제목도 독창성이 없기는 마찬가지. 어쨌든. [무산일기]를 막 재밌게 본 것은 아니지만 [무산일기]를 만든 감독이 추천한다고 하면 볼 만한 영화일 것 같아서 저벅저벅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를 다 본 소감은. 아 이야기 재밌네. 이거다. 너무 헝그리 정신 가득한 독립영화 이미지가 풍겨서 괜히 보기 싫었는데 보길 잘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아빠 친구 정도 되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아버지는 하는 일 없어, 어머니는 배운 게 없어서 돈을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고 누나는 시집 좋은데 갈 생각에 삐뚤어지고 '나'는 돈벌어 잘 살아 보고 싶다며 공부 안 하고.
보통 영화에서 가족을 여러 모양으로 그려내는데 이런 [굿바이 보이]처럼 가족이니까 징글징글해도 살아가는 이런 가족들을 보면 참 내가 행복한 거구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신거구나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일 안하고 세월 내월 놀면서도 집 안에선 가장노릇 한답시고 뻥뻥 큰소리를 내는 모습이 과연 정상은 아니지...라는 것, 어머니가 아무리 집안이 어려워도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이 보통 처절한 것은 아니지 하는 것 말이다.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걸까?
이 소년이 좀 착한 마음씨를 먹어주면 좋을텐데. 신문소 아저씨를 병신만드는 거 보면서 참 이거 뭐야... 뭐 어쩌라고 사람은 어쩔 수 없는건가. 보고 배운데로 갚는 것 말이다. 좀 영화가 허무주의가 있는 것 같다. 마치 그걸 현실인 양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영화 잘못 보면 우울한 기운만 안고 돌아가겠다 싶었다.
하지만 난 재미있게 이 소년을 지켜봤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남긴 그 딱딱한 두 덩이의 X.에서 거의 완전히 마음을 열어버렸다. 주변에 보면 가족이 족쇄처럼 옭아매서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이니까. 남남처럼 살 수는 없지. 하지만 난 사람들이 그럴 수록 좀 더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 영화에 나온 소년 처럼.
어쨌든 아직 소년이 책임져야 할 일은 없는 거다. 미리 나서서 책임진다 어쩐다 치기를 부릴 뿐이지. 소년은 아직 그냥 지켜보면서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아도 된다. 너무 부모님의 짐을 자기가 떠안으려고 하는게 문제다. 정말 평론가들이 하나같이 칭찬하던데 신파가 되는 것을 막은 나레이션. 그게 있어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이해가 되는 거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작년에 본 어떤 영화와 많이 비슷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도 작년 현충일 즈음에 본 것 같은데 뭐더라...하고 떠올린 영화가 있었으니 [계몽영화] 집에 와서 티켓을 살펴보니 작년 추석에 본 영화더군. [굿바이 보이]를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거다. [굿바이 보이]를 별 일곱 개 반 준다면 [계몽영화]는 아홉개 주겠어.
뱀다리
화면 때깔 좋더라. 독립영화같지 않았다. 정말 투명했다.
배우들 캐스팅 굿이더라. 신선한 얼굴들인데 연기를 하나같이 잘 해.
류현경씨는 고등학생이 되네? 와 신기.
연준석이란 아이, 정말 소년다웠다.
김동영? 이 아인 또 누구야. 반짝 반짝 빛나던걸.
안내상씨는 예전에 알던 이미지가 지적인 분이어서 20분 넘어서야 아 이 아저씨 지금 백수 연기 하는거구나 했다. ㅋㅋㅋ
김소희씨? 나 보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대학교 때 나 플래시 가르쳐 주던 교수님이랑 너무 닮았다. 그 분이 언제부터 연기를 했나 싶었다가 자막 보니 아니어서 안심...